도시가스 정압기실도 내진관리 대상…4530개소 대대적 점검
KGS GC203 개정…위험정도 따라 등급 분류해 체계적 관리
내진설계 완료한 가스업체에 인센티브 제공해 투자유인 필요

▲ 지진으로 인해 지하에 매장돼 있던 배관들이 노출돼 있는 모습.
[지앤이타임즈 박병인 기자] 지독한 안전불감증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지진이란 바다건너 옆 나라에만 해당되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6년 경주지진, 지난해 포항지진이 연거푸 찾아오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온 국민이 절실히 깨닫게 됐다.

이렇게 악몽처럼 찾아온 두 차례의 지진은 각종 시설물들을 주저앉히거나 파괴하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고압가스, LPG, 도시가스 등의 가스시설물들도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다. 가스시설의 경우에는 가스유출로 인한 화재, 폭발 우려가 있어 더욱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한국가스안전공사(사장 김형근)는 재난특별관리팀인 ‘내진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가스안전공사 내진TF팀은 두 차례의 지진으로 파괴된 가스시설로 인한 2차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안전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지진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가스시설들이 끄떡없이 견뎌내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진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보디가드’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 국내 내진 미 설계 가스시설, 탱크 3050개소‧배관 2만2000km 육박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의 가스저장탱크‧용기 9277개 중 내진 미 설계 시설은 3050개다. 비율로 따지면 32.9%에 육박하는 수치다.

가스배관도 심각한 수준인데, 전국의 가스배관 4만8655km 중 내진 미 설계 배관은 2만2777km에 이른다. 비율로는 46.8%로, 절반 가까이 되는 수치다.

최근 지진 위험지대로 떠오른 경북지역으로 한정해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다. 경북지역의 내진설계대상 가스시설 632개소 중 내진설계가 갖춰지지 않은 시설은 187개소로, 비율로는 29.6%에 이른다.

국내에 내진 미 설계 가스시설들이 상당히 많은 이유는 내진설계 기준이 200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내진기준을 세우게 된 계기는 지난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지진 때문이었다.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고베지진은 진도 7.3도의 초강력 지진으로, 당시 수십만에 달하는 주민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대교(大橋)같은 대형 건축물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등 막대한 시설피해도 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진에 대한 기준이나 규정자체가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고베지진을 목격하고 나서야 내진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고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던 것.

즉 2000년도 이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가스시설들은 실질적으로 내진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 내진 미 설계 시설, 내진성능 확인 후 보강…정압기실도 포함돼

내진 미 설계 가스시설들은 내진 설계된 시설들보다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스안전공사는 내진 미 설계 가스시설에 대한 내진성능을 면밀히 확인한 후 보수보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먼저 LPG, 고압가스의 경우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저장탱크‧용기에 대한 성능확인을 가스안전공사가 실시하고 각 연료공급업체에 통보한다. 가스공급업체는 가스안전공사의 통보에 따라 5년 이내에 내진보강을 완료해야한다.

도시가스분야에서는 그동안 내진관리에서 살짝 비껴가 있었던 정압기실에 대한 안전관리도 강화된다. 정압기에 대한 내진설계기준은 존재했으나, 정압기가 존재하는 건축물인 정압기실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이 없어 지진에 취약한 상태였다.

건물붕괴로 인해 가스시설이 파손되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지난 2016년부터는 정압기실에 대해서도 내진기준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국내 정압기실에 대한 대대적인 내진성능 점검이 실시되는데, 가스공사가 관리하는 정압기실 359개소는 올해까지, 도시가스사들이 관리하는 정압기실 4171개소는 2020년 까지 내진성능평가를 완료해야 한다.

▲ 포항의 한 건물로, 지진으로 인해 건물 일부가 부서져 내렸다. 가스시설에 건물파편이 떨어진다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 가스시설물, 위험등급 분류해 체계적 관리 나선다

지진공학회는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1억9000만원을 투자해 가스시설 지진안전성 향상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용역을 통해 기준강화, 대상확대, 점검방법, 보강방법, 진단방법, 지진매뉴얼, 평가지침, 건축물기준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내진설계의 기초 토대를 정립했다.

지난달 가스기준위는 지진공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기준으로 KGS GC203, 204를 개정하면서 내진 설계기준을 강화했다.

가스시설물들을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분류해 체계적인 관리에 나선다는 것이 이번 KGS 코드개정의 주요 골자다.

가스시설을 지진구역, 지진의 재현주기, 지반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위험도 등급을 분류해 관리하게 된다.

지진 피해 시 심각한 수급차질과 대형사고 위험이 예상되는 가스도매업소들도 마찬가지로 등급을 나눠 특별관리에 나서게 된다. 가스도매시설의 공공성, 인접 지역의 인구밀집도, 시설물 피해 복구기간 등을 고려해 영향도가 큰 경우 A등급, 그 외는 B등급으로 구분하게 된다.

또한 가스안전공사는 도시가스에 대한 지진대응 매뉴얼도 작성했다. 지진발생신고, 상황실 구성, 담당자별 행동요령 등으로 구성된 이 매뉴얼은 지진규모와 사업자 위치에 따른 점검방법과 지진대응교육과 훈련방법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액법, 고법의 적용을 받는 LPG와 고압가스의 지진대응 매뉴얼은 올해 상반기 중 제작이 완료돼 하반기경 배포될 예정이다.

아울러 가스안전공사는 내진성능확인 업무를 위한 장비예산 7억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강도측정기, 자분탐상기, 체결력측정기, 콘크리트두께 측정기 등 외관검사장비에 6000만원이 투자되고, 철근탐지기, 균열진행측정기, 디지털염분측정기, 철근부식측정기 등 내부진단 기기에 1억6000만원, 구조해석 프로그램에 4억8000만원이 투자된다.

◆ ‘인센티브 제공 통해 가스 내진설계 강화 사업 활성화 필요’

내진설계가 미흡한 가스시설물들은 시설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상황이 여의치는 않다.

끔찍한 지진을 두 차례나 겪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힌 안전불감증을 아직 완전히 뽑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지진을 실질적으로 경험한 포항, 경주 주민들을 제외한 타 지역의 주민들은 지진이라는 것이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비협조적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가스시설 내진강화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일선에 나서야할 가스공급업체들은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을 헛돈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가스안전공사 신승용 내진TF팀장은 내진 보강을 완료한 가스공급업체에게는 저금리융자, 지방세 감경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종의 ‘당근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승용 팀장은 “사실 지진을 직접적으로 접해보지 않은 타 지역의 주민들이나 가스공급업체들은 내진설계 강화에 부정적일 수 있어 접근하기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내진설계를 완료한 가스공급업체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공급업체들의 적극성을 이끌어내면 사업진행이 훨씬 원활해 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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