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출범식 등장 보팍*글렌코어 등 외투 기업 모두 포기
유일하게 가동중인 여수 기지는 국내용 저장시설 전락
답보상태 울산 북항 여전히 돈만 먹는데 정부는 남항 예타 실시

▲ 동북아 오일허브를 추진할 합작 법인 설립식에는 의례히 글로벌 해외 기업들이 등장했지만 모두 참여를 포기했다.사진 왼쪽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이재훈 차관이 2008년 9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석유공사, SK에너지, GS칼텍스, 오일탱킹(Oiltanking), 글렌코어(Glencore)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북아 오일허브 여수 시범사업 합작 투자 계약 서명식’을 여는 모습. 오른쪽은 2014년 1월, 당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동북아오일허브 울산북항사업 합작법인인 코리아오일터미널(주) 설립식에 참석해 석유공사, 보팍그룹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이다.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물동량 확보 못하면 고철에 불과, 국회 예산처도 위험성 경고-

이명박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됐고 박근혜 대통령은 에너지 분야 창조 경제 대표 사업이라고 평가한 동북아 오일허브가 아직까지 표류중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8년, 동북아 오일허브 1단계 사업으로 설립된 오일허브코리아여수(주)는 사실상 국내 업체들의 석유 비축 시설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울산 오일허브는 여전히 첫 삽 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오일허브에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제석유거래업이 법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주문해온 정부는 올해 초 석유사업법 개정으로 추진 동력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투자자를 끌어 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수나 울산 오일허브 모두 합작법인 추진 과정에서는 글로벌 물류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실제 진행 과정에서는 모두 두 손을 들고 빠져 나가며 ‘국내 기업들만의 리그(league)’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상용 운전중인 여수, 주주 대부분 국내 기업

동북아 오일허브는 아시아 석유 현물 거래를 주도하는 싱가포르 오일허브의 영향력에서 탈피하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 석유 거래 수요를 끌어 들여 우리나라를 동북아 석유 물류 거점으로 만들겠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 과제로 선정해 본격 추진됐다.

동북아오일허브 1단계 사업으로 추진된 여수 프로젝트는 석유공사 여수 비축기지내 유휴부지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상업적 유류 저장시설을 건설, 운영하겠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글로벌 석유 물류 기업인 글렌코어(Glencore)와 오일탱킹(Oiltanking)이 투자에 참여해 각각 14%와 35%의 지분을 확보하는 한편 합작 법인 명칭도 ‘오일탱킹-KNOC 여수 Co., Ltd.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모두 무산됐다.

외국계 기업들이 투자를 철회하면서 오일허브코리아여수(주)(Oilhub Korea Yeosu Co., Ltd)로 이름을 바꿔 출범한 이 회사는 현재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29%로 최대 주주이고 나머지도 SK인천석유화학, GS칼텍스, 삼성물산, LG상사, 서울라인 등 국내 기업들로 채워져 있다.

외국계 기업으로는 중국항공석유(CAO)가 유일하다.

특히 오일허브코리아여수는 자사 저장시설 활용도를 높이겠다며 국내 주주들에게 저장시설 의무 사용 계약을 요구하고 매출을 발생시키면서 내수 석유 저장 기지 역할에 그치고 있고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저장탱크 임대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회사 최대 주주인 석유공사도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151만 배럴의 저장시설을 임차 사용하면서 한 해 100억원이 넘는 대여료를 지불중인데 정작 이 시설을 다른 수요자에게 재임대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크게 낮아 지난해까지 4년 동안 37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 외국계 기업 참여는 공수표되고…

이명박 정부 시절 빛을 보지 못한 울산 오일허브는 박근혜 정부에서 바통을 이어 받았지만 역시 저장시설 건설은 첫 삽 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열린 울산 오일허브 북항 기공식에 직접 참석해 ‘에너지 분야 창조경제 구현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극찬했고 2014년에는 당시 산업부 장관이던 윤상직 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특수목적법인 형태의 코리아오일터미널(주) 출범식을 주도하는 등 분위기를 띄웠지만 아직까지도 답보 상태다.

대통령까지 기공식에 참석했던 울산 북항은 최근에서야 울산항만공사에서 부두 하부시설 축조 공사 정도를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2013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울산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사업 기공식에 직접 참여했는데 1단계 사업인 북항은 여전히 투자자를 유치하지 못했고 부두매립공사만 완료된 상태다.

울산 북항 오일허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인 코리아오일터미널(주)는 당초 출범식에서 석유공사 51%, 글로벌 물류 기업인 보팍 그룹(로얄보팍․보팍 아시아) 38%, 에쓰-오일이 11% 지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됐는데 이중 외국계 기업인 보팍은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

글로벌 물류 기업들이 여수와 울산 오일허브사업의 주주로 참여하고 저장시설도 상업적으로 이용해 동북아 석유 물동량을 유치할 것으로 정부는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공수표가 된 셈이다.

현 상황 역시 울산 오일허브에 해외 투자자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직 울산 북항 추가 투자자로 확정된 곳이 없다”며 “오일허브에 투자하려면 유가가 상승하고 변동성이 높아야 하는데 현재 처럼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저장시설 건설에 목돈을 들여 투자할 확신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투자자 기다리는 울산 남항에 혈세만 투입중

최초 계획대로라면 울산 북항 오일허브는 99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2016년에 이미 완공해 운영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저장시설 건설은 요원하고 투자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며 간신히 연명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울산 북항 오일허브를 추진하겠다고 설립된 코리아오일터미널(주)는 예비 주주인 석유공사와 에쓰-오일이 인건비 등 회사 운영 경비 정도만 납입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석유공사와 에쓰-오일이 초기 납입금을 투입해 코리아오일터미널이 설립됐는데 저장시설 건설 등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되는 상태가 아니어서 현재로는 회사 운영비 정도만 필요하다”며 “회사 운영비가 소진되면 예비 주주사들이 조금씩 추가 출자하면서 현재까지 석유공사 43억원, 에쓰-오일이 9억원 정도 납입했다”고 말했다.

▲ 정부가 오일허브 초기 단계에서 제시한 울산 허브 조감도. 북항은 2016년 완공, 남항은 같은 해에 착공한다는 계획이 소개되어 있지만 모두 지연되고 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는 정부 국책 사업을 대행 추진하는 입장이어서 발을 뺄 수 없고 온산에 정제공장을 운영중인 에쓰-오일 역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진척도 없는 회사에 국민 혈세를 포함해 50억원이 넘는 자금이 수년째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울산 오일허브 투자자 유치를 위해 울산시에서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레이트 등을 방문해 설명회를 열었고 석유공사도 추가 주주를 모집하면서 한 때 중국 국영 석유사의 자회사인 시노마트(Sinomart)와 국내 기업중에서는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대우인터내셔널 등과 주주 참여 기본합의서(Heads Of Agreement)를 체결한 것으로도 알려졌는데 이중 주주로 참여하겠다는 기업은 아직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185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추가 건설하겠다며 울산 남항 오일허브에 대한 예비타당성 검토를 최근 마무리짓고 사업 추진 대기중이다.

◇ 물동량 확보 못하면 고철덩어리 전락

이명박 정부 국정 과제로 시작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10년 가까이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동북아 오일허브가 표류하는 것은 사업성 부족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오일허브는 단순한 석유 저장시설과 달리 유가 변동에 따른 시세 차익을 노리거나 석유나 석유화학제품간 혼합 등을 통해 제조된 석유제품을 자유롭게 수출입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물류 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올해 초 석유사업법을 개정해 종합보세구역내에서 자유로운 석유 제조를 허용하고 거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국제석유거래업종까지 신설하며 해외 투자자 참여를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은 물론이고 해외 기업 어느 곳에서도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오일허브 참여를 희망하는 입질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오일허브 건설을 강행할 경우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 유휴 설비로 전락하고 막대한 국부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에 발간한 ‘공기업 사업영역 확장 평가와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동북아 오일허브 투자 위험성을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2조원의 민자 자본을 투자해 여수와 울산 지역에 연간 최대 4억 배럴 규모의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3660만 배럴 규모의 탱크터미널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사업 규모와 건설 시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보유 석유 비축 시설중 2000만 배럴 규모가 민간 기업에 대여중이고 정제업 저장시설 확보 의무 완화로 민간 부문에서 추가로 2000만 배럴 정도의 여유 저장시설이 발생하면 오일허브를 건설하지 않고도 총 400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오일허브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최대 주주인 석유공사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연구 용역에서도 규모의 적정성에 회의적인 평가가 제기됐다.

오일허브를 구축해 동북아 지역 석유 물동량 일부를 끌어 들이는데 성공하더라도 정부가 계획한 저장시설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며 128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 건설 시점을 늦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동북아 오일허브 타당성과 경제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신중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서는 ‘자본집약적인 장치 산업인 오일탱크터미널은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등 진입장벽이 존재해 안정적인 사업 영위가 가능하지만 일단 탱크를 설치한 뒤에는 매몰비용도 매우 크다는 단점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저장시설을 건설하고도 오일허브에 걸맞는 석유 물동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 연구위원은 동북아 오일허브를 위해 저장시설 확보도 필요하지만 그에 걸맞는 소프트웨어와 적정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달석 위원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은 전통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중시해 자국내 소비는 자국 안에서 정제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서 굳이 석유제품 위주로 추진되는 우리나라의 오일허브를 활용할 의지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 셰일 원유 개발 등이 확대되면서 중동 산유국을 비롯해 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아시아에 대한 원유 수출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만큼 이들 국가에서 원유 비축 등을 끌어 들이고 주변국과 연계시키는 원유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면서 저장시설 건설 규모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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