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가짜 납입에 저장*수송 설비는 임차하면 ‘끝’
한 해 수백여곳 진입*폐업 반복, 자료상 등 불법 업소 기승
옥석 가릴 수 있는 진입 장벽 필요* 대대적 실태 조사도 요구돼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석유대리점은 석유 도소매 사업자다.

정유사나 석유수입사 같은 최상위 공급자로부터 석유를 구매해 주유소나 석유일반판매소 같은 소매사업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이 도매다.

석유대리점 계열 주유소를 통해서는 최종 소비자에게 기름을 판매하니 소매사업도 겸하고 있다.

소비자가격중 세금 비중이 50%를 넘는 석유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남는 것은 적어도 매출은 큰 것이 석유유통사업이다.

왠만한 주유소 한 곳의 1년 매출만 수십억원이 넘는다.

그러니 석유 도소매는 겸하는 석유대리점 덩치는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석유대리점이 한 해 수백여 곳씩 새로 생겨나고 문을 닫고 있다.

석유대리점 사업자 단체인 한국석유유통협회에 따르면 2012년에는 무려 357개 석유대리점이 새로 생겨났거나 폐업을 했다.

이 기간 동안 168개 석유대리점이 신규로 등록했고 189개 석유대리점이 문을 닫았다.

이 해 말 기준으로 살아 남은 즉 정부에 등록된 석유대리점은 617곳.

등록 석유대리점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한 해 동안 새로 생겨나고 또 간판을 내렸던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년 반복되면서 한해 1~200곳의 석유대리점이 신규 등록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도 5월까지 34곳이 새로 시장에 진입했고 26곳이 폐업했다.

◇ 규제 완화로 시장 진입 지나치게 간소화

정유사 등으로부터 석유를 구매해 유통시키는 것이 석유대리점의 기본 역할인 점을 감안하면 사업 수행을 위해 상당한 자산이 필요하다.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최대 석유대리점중 한 곳인 KH에너지의 지난 해 매출은 1조원이 넘었다.

왠만한 중견 석유대리점들도 연간 매출이 수천억원 규모에 달한다.

그런데 석유대리점 등록 요건이 지나치게 간소화되면서 진입과 퇴출이 용이해졌고 그 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와 부작용이 양산된다는 것이 정통 석유대리점 업계의 불만이다.

현행 석유사업법령에 따르면 석유대리점 등록을 위해 납입자본금 또는 출자 총액이 1억원 이상만 있으면 된다.

납입자본금은 법인 등을 설립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본인데 가짜 납입을 통해서도 이 정도의 자본금 구성 요건은 손쉽게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시장의 비밀이다.

한 석유대리점 관계자는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본금을 일시적으로 납입해 설립 등기 증빙으로 활용하고 곧바로 인출하는 식의 가짜 납입으로 석유대리점 자본 등록요건을 손쉽게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벌크제품인 석유를 도소매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저장시설과 수송설비는 각각 700㎘ 이상과 50㎘를 확보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타인의 저장시설과 수송설비를 임차 사용하는 것도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편법적으로 석유대리점을 설립하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가짜 납입 자본금으로 법인을 만들고 타인의 저장 및 수송시설을 단기간 임차한다는 계약서만 확보하면 언제든지 진입이 가능한 셈이다.

◇ 가짜석유*무자료 거래 등 일삼고 폐업

손쉽게 석유 유통 사업에 발은 담근 석유대리점 상당수는 속칭 오더 장사 형태를 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전화 한 통만 개설하면 석유 중개나 알선사업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석유를 구매해 저장, 보관하고 소매사업자 등에게 수송 판매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별도의 저장시설 등도 갖추지 않은 이른 바 현물대리점들은 오더 장사를 통해 단순한 석유 중개 판매만 하고 있는 것.

그 과정에서 무자료 거래나 가짜석유 판매 등 불법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자원경제학회가 지난 2010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짜석유로 인한 연간 탈루세액 규모가 1조7000억원 수준인데 이와는 별도로 무자료거래도 5400억원 규모로 분석됐다.

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유령대리점을 만들어 세금계산서 등을 발행하지 않거나 가공의 가짜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폐업 또는 명의를 변경하는 등의 수법으로 천문학적 세금이 탈루되고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석유대리점의 손쉬운 신규 등록과 폐업 절차가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이 지난 2012년에 적발한 대규모 불법 석유대리점 조직은 바지사장 6명을 내세워 여러 개의 석유대리점을 만들고 가짜석유와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등을 통한 불법을 저지른 이후 대리점 폐업과 등록을 반복하는 방식을 동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 간격으로 유령 대리점을 만들고 폐업하는 것을 반복했다.

불법 석유대리점이 난립하면서 주유소 사업자들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2011년에는 불법 석유대리점과 거래한 서울과 경기도 소재 주유소들이 국세청으로부터 100억원대 규모의 소득세와 부가세 등을 추징당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석유유통협회에 따르면 불법 업자들이 일명 '폭탄 대리점'으로 불리는 유령 대리점을 만들어 대량의 매출을 발생시키고 고의적으로 폐업시킨 후 잠적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정상적으로 거래한 주유소들까지도 거래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워져 세금을 추징당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불법 석유대리점 난립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자 참다 못한 석유유통협회는 자신들의 회원사들에 대한 현장 실태 조사를 실시해달라고 정부와 감독 기관에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협회에 따르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지자체, 석유관리원과 공동으로 영세‧유령대리점들에 민관합동 현장실태 조사를 벌여 불법‧탈세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고 석유유통질서를 확립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협회 김상환 실장은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 완화 기조로 석유 저장이나 수송 같은 기본적인 시설 조차 갖추지 않고도 국가 석유유통의 허리 격인 석유대리점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가짜석유 유통과 무자료 거래 등 각종 불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정상적인 석유대리점과 주유소의 업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진입 장벽이 갖춰져야 하고 동시에 유령 대리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 조사에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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